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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기록하다: 리 프로젝트 시현하다 레코더즈 (ip:) DATE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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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l.14] 

마을을 기록하다: 리 프로젝트

By 인혁 에디터


카메라는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물건입니다. 카메라 셔터가 닫히는 순간, 시간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우리의 과거는 사진 한편에 남아있기 때문이죠. 


분명 같은 ‘나’지만 사진에 찍히기 전의 나와 찍히고 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듯이, 사진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들을 저장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합니다. 


흔히들 사진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라지는 ‘순간의 것’을 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이 된 우리는 이제 어디를 가든지 ‘인증샷’부터 남기곤 합니다. 여행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당연하고, 오늘 먹은 점심부터 하늘에 뜬 무지개까지 옛날이라면 눈으로 보는데 그쳤을 것들을 이제는 사진에 담아내기 바쁘죠. 


아마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바로, 우리 주위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영원히 기록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돌아보며 추억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사진을 남깁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기에 시현하다의 리 프로젝트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마산시 진동면 다구리, 동네 인구가 많아봤자 채 50명이 되지 않는 이 작은 동네는 바로 시현 기록가님이 살던 곳입니다. 점점 인구가 줄고 있는 이곳은 이미 누군가의 죽음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집 담뱃가게 할머니도 죽었대.”


“옆집 농사짓던 할아버지도 죽었다더라.”


결혼이나 취업 같은 마을의 경사 대신 누군가의 가슴 먹먹한 소식이 먼저 들리는 이곳 다구리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은 점점 조심스러워져만 갑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을 다구리의 시간들과, 시현 기록가님의 소중했던 공간은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마을도 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국의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우리 사진관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현 기록가, 소월 38가길 프로젝트 1화 中- 


다구리처럼 지금의 익숙한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자는 취지로 재작년 2019년 11월, 리 프로젝트는 첫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 시작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소월로 38가길, 바로 경리단점이 위치했던 곳입니다. 


“기록, 문화, 역사. 저희 사진관이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 같은 단어들이에요.”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기록, 그 기록으로 만들어진 문화, 그 문화가 나중엔 지금의 역사가 될 수 있게 시현하다는 소월 38가길 동네 주민들의 기록을 무상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경리단점 오픈을 준비하며 첫날 마을 주민분들에게 떡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근처 곳곳에 리 프로젝트를 알리는 포스터를 부착했습니다. 


리 프로젝트의 첫 손님은 독사진을 한 번도 찍어 보신 적이 없는 할머니. 촬영하는 동안 가수 나훈아 얘기만 들으면 활짝 웃으시던 할머니의 곁에는 왕 할머니와 대빵 할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여기 사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70년 살았지.”


“(옆에 있는) 할머니는요?”


“나는 글쎄.. 여기서 나고 자라서 80년은 살았어.”


이 공간에서 평생을 가까이 살아오신 두 할머니에게는 어느새 별명이 생겼습니다. 가장 유쾌하고 리더십 있는 할머니는 대빵 할머니, 제일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왕 할머니. 촬영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들은 한참 동안 자신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할매 더 젊어졌네, 아들이 보면 춤추겄네.” 


소월 38가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셨던 왕 할머니 (위)

나훈아 얘기만 들으시면 활짝 웃으시던 할머니 

(아래)


서로의 사진을 보며 덕담을 주고받으시던 동네 할머니들을 시작으로 많은 분이 시현하다를 찾아 주셨습니다. 생일을 맞이해 아내분과 함께 시현하다를 방문하신 소월 카페 사장님, 파키스탄에서 온 하스나인은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도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봤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동생도 부모님도 데려올 거라고 가족들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촬영자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외국 친구 한 명이 눈에 띄었어요. 대화를 나눠보니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해서 저희 사진관과 프로젝트를 설명했더니 흔쾌히 승낙해서 바로 사진관으로 입장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도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봤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동생도 부모님도 데려올 거라고 가족들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그때 사진을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좋은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성별, 나이,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도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연 기록가-



촬영이 끝난 후, 소월로 38가 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 달라는 저희의 부탁에 주민분들은 저마다 아끼고 있었던 곳들을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설렌 목소리로 자신만의 공간을 알려주시던 동네 분들의 목소리에는 소월로에 대한 애정과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옛날에 저짝에 행길있는 저기가 세탁소가 있었어. 첫 사랑을 거기서 만난거야.”


여기 뒤에 쪼끔만 올라가면 그 남산타워랑 밤에 야경이 보석함 같은 느낌이에요.” 


왕년에 사진관을 운영하셨던 아버님, 입시생 수민님, 그 밖에도 많은 분이 소중하게 남겨 주신 이날의 기록들은 도록으로 제작되어 용산 동사무소에 기증됐습니다. 동사무소로 향하는 길에 만난 왕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반복하셨습니다. 


“촬영 때 옆에서 문하생으로서 지켜보며 이 동네에 살았던 이야기, 부모님 연애 이야기, 할머님들의 수다 등을 들으며 기록을 남겨드리는 모습, 그 장면 장면들이 하나의 따뜻한 이야기 같아서 단순한 사진 한 장 이상으로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 진솔 기록가-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볼 수 있었던 라이프 사진전: The Last Print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현대 포토 저널리즘의 가치를 정립한 로버트 카파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본질은 진실을 담아내는 데 있으며, 만약 진실이 담기지 않았다면 그 사진은 절대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는 그의 명언은 기록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담아내겠다는 시현하다의 목표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시현하다가 담아낸 소월로 38가의 사람들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상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모두의 기억 한편에 소중히 간직된 리 프로젝트는 아직도 기록가님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시현 기록가

“그렇게 좋아하던 공간에서 2년을 머물고 떠나던 날, 한 할아버지가 오셔서 특유의 시니컬한 모습으로 사장을 찾으시더니, 툭 하며 흑마늘 즙을 주셨어요. 


'그때 정말 고마웠는데, 이런 거 밖에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라고 말하시며 나가셨고, 할아버지를 모셔드리러 따라 나갔을 때 저희가 촬영해드렸던 마을 주민분들이 모두 나와 잘 가라고, 부자 되라고 응원해주실 때 그 감정이 너무 뭉클했어요.” 


진솔 기록가 

“리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고, 사진과 이야기가 책자로 나온 후 점심시간에 쉬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놀러 오셨더라구요. 저희 직원들이 주민분들 촬영해 드렸던 거 책으로 나왔다고 자랑하며 보여드렸는데, 


소파에 앉으시더니 도록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계속 여기 살았었지’, ‘이 길목이 예전엔 이런 길이였어’ 등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처럼 호탕하게 웃으면서 추억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걸 듣고 있을 때 경리단점 통유리에 빛이 내리쬐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요아 기록가 

“리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경리단점에서 근무할 때마다 가득 쌓여있던 커피 맛 사탕이 생각나요. 사진관으로 들어오는 골목에서 저희를 맞아 주시던 할머님들을 촬영해드렸을 때 왕할머니께서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고 내어 주셨던, 할머니의 소중한 간식이었어요. 


그 커피 사탕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리 프로젝트는 저희에게 출근길이 일하러 가는 시간보다는, 풍성한 고향에 가는 것 같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던 것 같아요.” 




매일 걷게 되는 길, 매일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실 당연한 것들이 아니지만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것들도 언젠가는 우리의 곁을 떠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사라져 가기에 더 기록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 한 편을 시현하다에서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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