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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매거진

<필립 할스만: 점핑 어게인> 리뷰 시현하다 레코더즈 (ip:) DATE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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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할스만: 점핑 어게인> 리뷰

By 인혁 에디터

트램펄린, 또는 방방.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점프’라는 기본적인 원리는 같았던 그 놀이기구 위에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사진가 필립 할스만은 이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 정도로 끝났을 ‘점프’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접근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점프하라고 하면, 그는 점프라는 행동에만 집중하게 되어 얼굴에 씌워진 가면은 벗겨지고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점프를 하는 순간 피사체는 표정, 얼굴, 온몸의 근육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진정한 자아를 드러낸다. <필립 할스만: JUMPING AGAIN> 사진전에선 그가 담아낸 이런 점프의 마법이 담긴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 어떤 것으로부터든 점핑 어게인. 



5월의 어느 봄날에

전시를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것을 얻어올지에 대한 기대감, 또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다행히 <점핑 어게인>은 이미 보여주고 싶은 게 분명한 전시였다. 우선 전시 소개글부터 명쾌하다. 명예와 타인의 눈길에서 벗어나 점프하는 사진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의 시대에 딱 어울리는 메시지다. 


전시회는 그 예술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좋은 창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사진이 지닌 가치의 수명은 정말 오래간다. 예전에도 사랑받았던 사진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초상 사진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경험하고 소개하기 위해 시현하다가 담아내고 있는 ‘인물 초상 사진’의 과거를 찾아 떠났다. 



전시장은 시현하다 압구정로데오점과 단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에어컨을 틀어 서늘한 공기가 땀으로 젖은 피부를 차갑게 식혔다. 안내해주시는 분이 간단한 설명을 해 주셨다. 전시는 2층에서 열리고, 전시장에는 미니백 사이즈 정도의 가방만 들고 올라갈 수 있다. 위태롭게 뻥 뚫려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서자 할스만의 연대기가 적힌 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할스만은 예상보다 훨씬 점프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아예 점프를 하는 사람의 몸짓을 분석해 내면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점프학 (Jumpology)이라는 학문까지 만들었다. 가령 웃으면서 점프하는 사람은 새로운 활동을 즐기는 성향이 있고, 양팔을 벌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런 식이다. 이 정도면 점프에 꽤나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인생은 그가 찍는 사진처럼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차별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을 가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4년간 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는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면, 과연 진실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할스만이 내린 결론은 바로 점프였다. 



기분이 나쁠 땐 이 포즈를 따라해 보세요

모두가 점프를 한다. 오드리 햅번도, 마랄린 먼로도,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도. 필립 할스만의 렌즈 앞에선 모두가 공평하다. 


할스만에게 점프는 단순한 포즈 그 이상이다. 시현하다가 ‘색’을 통해 기존의 초상사진에 반기를 들었다면, 할스만은 점프라는 포즈로 초상 사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다 못해 아예 기존의 개념을 날려 버렸다. 


그가 찍는 피사체들은 정치인, 방송인, 배우 등등 시대를 상징했던 쟁쟁한 사람들이다. 할스만은 누구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던 인물들이 남의 시선을 뛰어넘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길 원했다. 


“우리는 성격이나, 감정에 대한 표현을 절제하도록 교육받아 왔다. 깊숙이 자리한 심리상태나 본성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점프를 시킨다. 뛰어오르는 찰나의 1초, 그 순간 우아한 여배우도, 베일에 싸인 예술가도, 고독한 정치인도 가면을 벗어던진다.”


그런 할스만이 찾아낸 답은 점프였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포즈나 표정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유롭게 드러나는 피사체의 모습들을 하나 둘 카메라에 담아냈다. 전시에는 이런 다양한 피사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약 150여 점 정도가 빼곡하게 걸려있다. 



출처: K 현대 미술관



전시장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분홍과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전시장에서는 흔하게 보지는 못하는 컬러들이다. 덕분에 밝은 벽과 대비되는 흑백의 사진들이 훨씬 눈에 잘 들어왔다. 


내부 구조도 특이하다. 8개의 섹션에 맞춰 8개의 방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벌집 같은 모양새다. 분리되어 있는 하나의 방처럼 보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마치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각자의 인생은 사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이제 와 보니 각자 다른 삶을 살았지만, 점프라는 소재로 하나가 된 피사체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총 8개의 ‘방’ 같은 구조로 이뤄진 전시장은 방마다 다른 주제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이런 곳에서 보는 게 신기한 반가운 얼굴들도 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이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할스만은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당시에도, 여전히 파격적이었던 살바도르 달리와도 친분이 있었다. 무려 37년짜리 우정이다. 



<달리 아토미쿠스>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무려 28번 만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점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달리다. 이 사진이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 싶지만 참고로 할스만의 시대에는 포토샵이 없었다. 28번 동안 물을 쏟고 닦고, 아내에게 의자를 들고 서있게 하고, 고양이를 던지면서까지 이 사진을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달리가 그리는 ‘그림’ 때문이었다. 


달리가 그려내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현실에서도 그려내고 싶었던 할스만은 마침내 이 사진 한 장으로 그의 가설을 결과물로 증명해 내는데 성공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인 점프샷은 아니지만,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던 그의 집요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달리의 사진이 인상 깊었던 <초기 아방가르드 작가들과의 예술적 교류> 섹션을 지나, 다음 섹션으로 향했다. <육체적 그리고 심리적 해방감>이라는 이름의 섹션이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전시의 메인 이미지이기도 한 오드리 햅번, 그리고 마랄린 먼로. 할스만이 담아낸 먼로의 모습은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금발의 순백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사진과는 많이 달랐다.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높이에 사진이 걸려있는 탓에 가까이 다가가 먼로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제서야 할스만이 왜 그렇게 점프샷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초상사진이 피사체가 보여주고 싶은 매력을 극대화한다면, 점프샷에서는 피사체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매력이 느껴진다. 


이 차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관능적인 미소 대신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마랄린 먼로의 점프샷에서 두드러졌다. 섹스 심벌로 20세기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누구보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 먼로는 점프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Jump Over Everything

마지막 섹션으로 향할수록 전시의 메시지가 확실히 와닿았다. 제약, 차별 그리고 경계를 뛰어넘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 섹션에서는 차별에 대항하고 불합리함을 뛰어넘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출현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도 오르지 못했던 시절,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흑인 배우들과 성소수자들의 초상까지. 


할스만이 생각하는 점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서만 끝나지 않았다. 뛰어넘을 것은 많다. 시대의 한계, 편견, 다른 사람들의 시선 등등. 점프는 사진 속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현실까지 이어지는 점프는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 


관람을 마치고 내려온 1층 굿즈샵에서는 할스만의 사진들이 포토부스에서 나온 사진처럼 재가공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은 현대화되고 있다. 할스만의 점프샷으로 시작해 시현하다의 컬러 증명사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초상 사진의 변화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할스만이 남기고 간 시도는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초상 사진으로 무엇을 담아내고, 또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는 것인가. 


할스만의 작품들은 우연의 순간을 촬영한다는 점에서 보면 시현하다의 베베가 떠올랐고, 인물의 숨겨진 개성을 담아낸다는 점에선 모먼트 촬영과 맞닿아 있었다. 초상사진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이어 그 시대를 담아내는 소재였다. 

 


전시 제목: 필립 할스만: JUMPING AGAIN

기간: ~2022.06.05 (일)

장소: K현대미술관

관람 시간: 화~일요일 10AM ~7PM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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