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나나영롱킴

INTERVIEW 나나영롱킴

By 민후 에디터

 


짙은 화장과 풍성한 가발,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의상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드랙 아티스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데요. 말투, 행동, 표정, 작은 손짓 하나하나 마저 마치 기존에 알았던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죠.


앞서 이야기한 ‘드랙(Drag)’이란 성별에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인데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성 소수자 문화로 등장했던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으나, 20여 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다양한 매체에 드랙 아티스트들이 출연하기 시작하고, 모델로 활동하는 등 하나의 문화로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오늘 매거진을 통해 소개해 드릴 ‘나나영롱킴’ 님은 2006년부터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을 해온 ‘드랙퀸’이에요. 뮤직비디오, 광고, 캠페이너,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시던 중 저희 시현하다에 방문해 ‘나나’의 모습과 ‘김영롱’의 모습을 각각 기록으로 남겨주셨답니다. 두 캐릭터 모두 매력적이었던 ‘나나영롱킴’ 님과의 인터뷰를 지금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드랙퀸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나영롱킴입니다



'드랙'이라는 문화를 다소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드랙’ 문화에 대해 짧게나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자기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겉으로 과장되게 방출하는 행위 같아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드랙의 가치관이나 정의가 다르다 보니 무엇이 정확히 옳다고 단정 지을 순 없으나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늘 설명하는 편입니다.



활동명을 '나나'라고 짓게 된 이유가 중학교 시절에 장기 자랑으로 텔레토비의 '나나'역을 맡았었는데, 이걸 그대로 사용하신 것이라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끼가 많은 편이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끼가 많았지만 적당히 차분한 장난꾸러기였던 것 같아요.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재밌는 친구였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만 교류가 있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롱’이라는 이름이 활동명인 줄 알았는데 실명이라는 것에 놀랐어요. 이렇게 ‘나나’와 ‘김영롱’이라는 이름을 합치고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원래 활동명은 최초에 나나 두 글자였으나 뭔가 좀 더 나를 녹여내고 싶어서 뒤에 실명을 붙였습니다. 한류가 엄청난 열기를 띠게 된 시점으로 해외 팬들이 한국 LGBTQ+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졌는데요. 한국 드랙퀸에 대해 찾아보다 보면 저를 분명 발견할 것이라 생각해서 활동명 뒤에 실명을 붙여 풀네임으로 ‘나나영롱킴’ 이 되었습니다. 좀 더 한국적인 이름의 요소가 들어가서 누가 들어도 한국인 드랙퀸이란 걸 인식시키고 싶었어요.



'드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대학생 시절 영화 '헤드윅'을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포인트'가 있었을까요?

헤드윅의 경우 드랙퀸의 요소보다 제가 ‘Gay’라는 것에 좀 더 성적 취향적인 것에 확고함을 심어준 영화고요, 물론 드랙적인 요소도 녹아 있는 영화가 맞지만 저는 트웡푸와 프리실라를 보고 드랙퀸의 매력에 좀 더 많이 빠졌던 것 같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고 멋진 디바들처럼 표출해 내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드랙’을 그만두고 패션회사(여성 구두 브랜드)에 취직해 일을 시작하셨어요. 회사에 취직하게 되신 이유, 그리고 다시 드랙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상 드랙퀸이란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어려웠어요. 학교도 다녀야 되고 드랙 활동도 해야 되고 알바도 해서 생활비도 벌어야 되고… 결국에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벅차게 느껴지면서 일단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모든 걸 병행하다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드랙 활동을 잠시 쉬게 되었죠. 사실상 드랙퀸이란 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혼자 다 준비를 해야 되는 부분이라 여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보니 정비도 마련해야 되면서 생활도 이어가야 되기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사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처음 드랙퀸 분장을 하셨을 때가 2006년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컨버스 캠페인의 메인 모델, 보그 코리아 선정 주목받는 22인 중 1인, 'HERA'의 캠페이너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셨어요. 예전과 지금, 드랙퀸으로서 활동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도 그때도 변함없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드랙에 대한 자부심이 큰 편입니다. 그 당시에도 변하는 제 모습이 즐거워서 시작했고, 지금 또한 변하는 제 모습이 여전히 즐겁고 재미있는 부분으로 다가와서 쭉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좋게 봐주시고 잘 봐주셔서 여러 매체에서 찾아주시는 것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MBTI가 'INTJ'로 알고 있어요. 사실 'I' 성향이라고 하면 내성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무대 위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드랙퀸'의 MBTI라고 하니 반전 아닌 반전인 것 같아요. 혹시 드랙퀸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따로 있으신 건가요?

저는 드랙을 하나 안 하나 똑같은 아이텐티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드랙퀸으로 변하면 좀 더 밝고 과감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성격으로 친다면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말씀하신 대로 ‘I’성향이 100퍼센트라서 평소 행사장이나 공연장에서 보여지는 텐션 높은 에너지는… 어느 정도 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ㅎㅎ



대한민국의 대표 드랙퀸 중에 한 명이세요! 이런 타이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말 그런 수식어가 부담스럽고 아직 부끄러워요... ㅎㅎㅎㅎㅎ 무언가 대표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면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저는 사실 그런 거 싫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래요. ㅎㅎ



본인이 직접 섭외, 컨셉, 기획 등 다양한 과정에 모두 참여해서 사진전을 개최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일부 작품을 보았는데, 모두 강렬하면서도 인상 깊게 느껴졌는데요. 이렇게 사진전을 개최 해오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사진전 중에서도 특히 애착이 갔던 사진전도 궁금해요.

뭔가 드랙퀸으로써 더 다양한 카테고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꼭 공연무대위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드랙퀸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오면서 천천히 사진전도 구상하게 되어서 진행하게 된 것 같습니다. 딱 한 점을 고를 순 없고 사실상 사진전을 위해서 모두가 힘을 합해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갚진 전시인 것 같습니다.



추후 사진전을 기획하신다면 저희 시현하다에서 촬영하신 사진도 추가될 가능성이 있나요?ㅎㅎ

올해 가을, 겨울 목표로 지금 구상 중에 있으며 한번 세션을 구상해 볼게요!! ㅎ



최근 코치(COACH) 성수 팝업 스토어 포토월 행사와 '2024 F/W 서울패션위크' 선우 패션쇼 등 다양한 활동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 ‘나나’와 ‘김영롱’ 각각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이실까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순간순간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제가 풀어낼 수 있는 컨디션 안에서 일을 하는 편이라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이걸 해야지’ 이런 것보다 그때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해낼 것이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는 저도 아직은 모르겠네요.



이태원과 청담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드랙 무대 공연은 관객과의 거리가 가깝다고 들었는데요. 그만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에너지와 긴장감이 높을 것 같아요. 그런 상황과 관련해서 관객과 드랙 서로가 무대를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컨택도 많이 해주시고, 소리도 많이 질러주시고,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 예쁘다 멋지다 외쳐주시면 최고죠. 팁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공연 중 퍼포먼스가 맘에 들면 만원 오만 원씩 팁을 주는 문화가 드랙공연을 보는 문화 중에 일부라 그런 서비스도 해주시면 떙큐!

 


촬영 진행에 앞서 촬영 공간이 시원한지 물어봐 주셨어요. 이어서 분장이나 가발을 썼을 때의 컨디션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장을 한 상태에서 계속 행사를 가거나, 공연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소모가 꽤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화장이 워낙 두껍고 가발이나 의상들이 사실 조금 불편한 부분이 많이 차지하고 있어요. 특히나 화장의 경우 두껍다 보니 현장에 조금 덥거나 습할 경우 바로 메이크업이 무너져 버리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스튜디오 촬영장은 얼음장같이 시원한 게 오히려 좋은 편입니다. 특히 여름 시즌이 드랙퀸들에겐 가장 힘든 계절이 아닌가 싶네요. ㅎㅎ 평소 체력관리는 저의 경우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아침에 크로스핏, 저녁엔 헬스를 평행하고 간간이 한강 러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현하다에서 착용하신 핑크 드레스는 처음 공개하신 거라고 들었어요. 이 스타일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사실 의상은 늘 새롭게 준비를 해오고 있습니다. 드랙퀸의 매력 중에 하나가 새로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새로운 룩을 보여주는 묘미가 있다 보니 이번에는 분홍색 드레스로 한번 맞춰보았는데요. 아직 화보나 제대로 된 사진촬영을 하지 않은 룩이었는데, 때마침 시현하다와 연이 닿게 되어 여기서 보여주면 좋을 듯해 강렬한 핫핑크의 드레스로 룩을 꾸며보았습니다!

 


한국의 1세대 드랙퀸으로서 현재도 물론 독보적인 자리에 계신 것 같은데요.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하실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해요.

이제는 제 위로 3분이 남아계십니다. 왕 언니, 아리 언니, 니나노 언니. 이렇게 3분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이분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시며 멋진 모습으로 계속 활동해 주고 계시기에 저 또한 시너지를 받아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시현하다 안에 다양한 기록가가 있는데요. 시현하다 스타일의 사진이면서도 기록가마다 특징과 강점이 서로 달라요. 이처럼 드랙퀸 사이에서도 본인이 특히 강점으로 내세우는 부분이나 차별화를 주기 위한 요소가 있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다른 드랙퀸들보다 ‘예쁜 것’ 같아요.. ^^ 후훗 (드랙퀸은 자존감이 높아야 된다!!!!!!!!!!!!)



이번 시현하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나나’와 ‘영롱킴’의 졸업사진 컨셉을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어떻게 졸업사진 컨셉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시현하다 하면 저에게는 증명사진 느낌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많이 자리 잡혀있었어요. 또한 지금까지 화보 촬영은 거의 다 화려하고 움직임이 많고 여러 가지 요소가 다분하게 녹아 있는 촬영들 위주로 진행해 왔었는데요. 시현하다의 증명사진 느낌처럼 정적이고 정면을 응시하면서 정직한 모습의 사진촬영은 저도 아직 경험이 없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원래 모습과 드랙퀸인 모습으로 둘 다 이미지가 겹쳐지게끔 뭔가 찍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제안했는데 너무나도 잘 나온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도 5년 만에 변경했다는 사실.



처음 시작은 ‘나나’님의 프로필 바꿔드리고 싶어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데, ‘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졸업사진도 찍게 되고, 매거진과 화보까지 진행하게 되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신 에너지 덕분인데, 너무 감사해요 ㅎㅎ 이렇게 콘텐츠를 만들고 남기는 것에 진심이신 것 같은데요. ‘나나’님에게 사진과 기록은 어떤 의미이신가요?

‘역사’인 것 같아요. 내 인생의 내 삶의 역사. 그 두 글자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나나영롱킴 님에게 영향을 받거나, '드랙'이라는 문화에 영감을 받고 이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열심히 하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한 것 같지만 ‘잘’ 해야 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잘’ 하는 사람이 좋아요 뭐든. 당연히 처음부터 잘할 순 없어요. 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잘 바라볼 줄 알면서 사랑한다면 어느 순간 멋진 드랙퀸인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나영롱킴 님은 이 시대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으신가요?

나나영롱킴이란 이름을 들으면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해드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