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변재선
By 민후 에디터
2019년 겨울, 첫 번째 칸 기록가가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을 기록해 온 진솔 기록가가 5년이 지난 지금 다섯 번째 칸으로 승급되었습니다!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진솔 기록가에게 어떤 콘텐츠를 진행하고 싶은 지 저희 브랜드콘텐츠실에서 직접 물어보았는데요.
"우리 아빠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어요."
놀랍게도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아버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답변을 주었습니다. 사실 진솔 기록가는 아버님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아버지께 감사함을 담아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특별한 추억으로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제안했다고 합니다. 진솔 기록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아버지의 다채로운 모습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지금 함께 들어보실까요?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진솔 기록가 아버지 변재선입니다. 군 생활 34년 하고 퇴직한 다음에 또 금융회사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지금은 세종대학교 정보보호학과에서 초빙 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라를 위해 복무하신 후, 교수님이 되신 점이 굉장히 인상 깊은데요. 그중에서도 정보보호학과 교수가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실까요?
제가 군에 근무하면서 컴퓨터 전공을 하면서 IT분야, 정보보호 분야 이런 업무들을 진행해 왔어요. 더 나아가 관리자 역할까지 맡았었는데요.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 대학교에서 제안을 받아 지금 3년째 정보보호학과에서 교수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이버전 개론 또는 관제 및 대응 정보보호법 제도 정책 등 이런 분야에 강의를 하고 있어요. 군에서 담당했던 업무와 연관성이 있고 제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책임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님만의 사명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사이버 사령관으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실무 경험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저희 학생들이 이 분야에 특히 더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고요. 우리 과 학생들은 학문을 배우는 분야라서 그런지 실무에 참고할 수 있는 경험들을 특히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해킹과 같은 사이버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이,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미래에 사이버 안보 분야의 주역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개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맡은 분야에 사명감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끼고 있죠.
아버님을 닮아 진솔 기록가도 주어진 일을 멋지게 해내시는 것 같아요. 시현하다 내에서도 기록가들을 잘 챙기고, 리더의 역할을 잘하는 기록가거든요. 아버님이 보기에 진솔 기록가가 아버님을 닮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사실 저는 굉장히 자유롭고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성향이에요. 근데 진솔이도 자존감이 높고 혼자만의 영역을 잘 챙기면서도 남을 위한 배려심이 굉장히 깊거든요.
아까 사진 찍으면서 진솔이가 시현하다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오는 고객분들이 편안하게 찍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걸 어떤 말로 이해했냐면 스스로 자유롭고 편안하길 원하는 사람은 나처럼 상대방 또한 그런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진솔이가 손님들이 편안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점들이 저하고 닮았단 생각을 종종 했어요.
진솔 근데 그걸 서로 얘기는 안 해봤어요. 오늘 저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요.
재선 그렇죠. 이 부녀지간도 대화가 평소에는 짧게 짧게 일상적으로 주고받지만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건 많지 않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ㅎㅎ
오늘 기록에서는 3가지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앞서서는 아버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면 캐주얼한 룩과 어울리는 질문을 해볼게요. 아버님의 평소 취미가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 60대 중반인데 취미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질문하면 사실 지금도 답을 못 하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MZ세대와 저희 세대의 차이점이 저희들은 과거에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한 게 아니고, 여건에 맞게 그냥 해오다 보니 지금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직업도 선택했고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온 것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저에게는 참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도 대답해 드려야 한다면 저는 요즘 골프를 좋아해서 종종 치러 나가곤 한답니다.
골프를 치는 게 가장 좋아하는 것이긴 하지만… 취미 생활이라고 해도 될까요? 이 외에 취미생활이라고 말할만한 게 무엇인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문학적으로나 인문학적, 음악적인 예술 분야를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는데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진솔 만드시는 것을 잘하지 않으셨을까요?
재선 손재주가 있긴 하지. 애들 침대 같은 거 만들어주고 그런 거 잘했죠. 어릴 적에 2층 침대 만들어서 종우, 진솔이를 위해 미끄럼틀까지 있는 침대를 내가 만들어줬거든요.
진솔 기록가님 기억나시나요?
진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아빠가 집에서 뚝딱뚝딱 침대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땐 그게 그렇게 대단한지 몰랐어요. 그저 2층 침대가 생긴다는 게 신났던 것 같아요
모양이 정확히 기억나요!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고, 내려올 땐 미끄럼틀로 내려오는..! 오빠랑 그 침대에서 소꿉장난도 하고 많이 놀았던 기억이 나요. 기억에 남는 게, 1층에 누운 사람이 발로 2층 판자를 밀면 위에 있는 사람이 침대 판자와 함께 들리는(?) 구조였는데 오빠랑 싸우면 오빠가 화나서 발로 판자를 들어서 저를 들어버렸던 기억도 나요.
어린 시절에 다들 소중했던 애착 장난감 하나씩 있잖아요? 여러모로 저희 남매에겐 그 침대가 추억에 큰 부분을 차지했었어요.
지금까지 시현하다 기록가 중에 부모님 사진을 진솔 기록가가 가장 많이 남겼더라고요. 이건 진솔 기록가와 아버님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이 많은 사진을 남기셨을까요?
진솔 제가 데뷔 때부터 많이 언급 했었지만, 엄마 사진을 많이 남겨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었기에 “아빠 사진만큼은 후회 없이 많이 남겨드리자” 결심했어요 :)
우리네 아빠들은 30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셨고, 비슷한 포즈의 사진들을 많이 찍으시잖아요? 저는 아빠의 청춘을(지금도 청춘이시니까) 더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많이 남겨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빠가 그런 저의 마음에 잘 따라와 주시고 또 사진에 멋지게 담기는 것을 나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찍게 되었어요. 아빠를 많이 기록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지 않을까요.
진솔님과 지금도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고 싶은 아버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데요, 부녀지간에 데이트를 하기도 하나요?
재선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지난번에 진솔이한테 ‘너 촬영 날 점심시간에 시간 되는 날 나한테 연락만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밥 사줄게’ 했거든요. 근데 진솔이가 촬영 날 밥 사달라고 전화한 적이 없어요. 촬영 날은 진솔이가 워낙 바빠요. 그래서 한 번도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시현하다가 우리 딸을 뺏어갔죠.ㅎㅎ
진솔 밥 한 끼 먹는 시간을 못 낸 게 마음이 쓰이네요. 시간을 내볼게요.
재선 진솔이가 시현하다 입사하기 전에 나랑 둘이 산 적이 있거든요.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딸이 결혼도 하고 하니, 그럴 시간과 기회가 없어져서 더 아쉬운 것 같아요.
진솔 아빠랑 저랑 휴무일이 다른 것도 큰 것 같아요. 아빠가 아쉬워하는 걸 오늘 알았으니 조만간 데이트 각 잡아볼게요.
오늘 촬영이 데이트가 될 수도 있겠네요. 컨셉을 3가지 준비해오셨는데요. 각 컨셉에 맞춰 표현하시고자 했던 포인트가 있을까요?
진솔 아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이 군인이에요. 제가 아가일 때부터 대학교 졸업 이후까지도 매우 오랫동안 저에겐 군인 아빠로서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역할 때 사진을 남겨 드리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는데 이번에 아빠의 자랑스러운 오랜 직업을 꼭 남겨드리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전역하시고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화보처럼 담아드리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마지막으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 모습, 장난꾸러기에 긍정적이고 밝은 아빠의 성격이에요!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셨던 만큼 닮고 싶은 아빠 모습이라 제 최애 사진이 될 것 같네요.
이번 촬영을 하면서 아버님도 자신의 3가지 면이라던가, 자신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 돌아보는 시간이 되셨을 것 같아요. 인생을 돌아볼 때 아버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살면서 여러 가지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지요!
첫 번째는 당연히 아들과 딸이 태어나는 과정이에요. 아들은 출산 예정일에 휴가를 내서 갔는데 예정일이 지나도 태어나지 않더라고요. 휴가를 연장하면서 힘들게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본 순간! 그리고 딸은 예정일보다 빨리 나오려고 해서 급히 병원으로 한 시간을 이동하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30분 만에 나와서 조금만 늦었어도 차량에서 태어날 뻔한 순간이 가장 뭉클하고 가슴 벅찬 기억이었어요.
두 번째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전후방 각지에서 위수지역이라는 지리 공간적 제한을 두고 생활하는데, 94년도에 약 20개월간 유럽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딸과 아들이 만 2~3살, 3~4살이었을 때인데 오스트리아 각 도시를 여행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캠핑도 하면서 차량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기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지요. 그때 찍은 필름 사진과 캠코더 영상이 지금도 집에 한가득 있네요.
마지막으로는 진솔이 관련 기억으로 엄마가 매우 아파서 중3 때부터 따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도 고등학교 때 갑자기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더니 수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했던 것. 디자인학과 졸업 후에도 갑자기 좋아하는 사진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저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후원하면서 현재, 시현하다 다섯 번째 칸 작가가 된 것은 아빠로서 참 자랑스러운 기억입니다.
아버님에게 있어 기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기록이란 국가나 민족의 역사, 조직이나 기업의 연혁, 일반 가정의 족보, 개인의 인생 역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사진을 찍고 그것을 남긴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느껴져요.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록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관련된 네트워크(가족, 친구, 비즈니스 등)를 유지하고 관계를 맺는 전 과정을 담고 있으니까요!
특히 요즈음 각종 SNS를 통해서 기록을 저장하고, 공유하는데 1순위 매개체가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사진 이외에도 생각이나 사실을 기록한 글이 중요한데, 좀 더 살아본 다음 80세쯤 되면 내가 살면서 순간순간 남긴 생각과 살아온 역정을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유명한 분들이 남기는 자서전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살아온 삶의 궤적을 자손들에게 남기는 것이지요!
시현하다 다운 질문 하나 해볼게요.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를 골라본다면?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제 내면에 있는 형용사가 다른데요. 이번에는 내면에 있는 형용사를 이야기해 볼게요.
첫 번째로는 #자유분방한, 그리고는 막 빨간색처럼 뭔가 이렇게 #열정적인. 이런 게 제가 내면에 갖고 있는 형용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은 틀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틀에 갇혔다는 것은 방금 이야기한 형용사를 내가 살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라 생각돼요. 조금 더 자유롭게, 형식에 갇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열정적으로 해내고 싶은 일이나 새로운 경험이 앞으로도 많이 주어지길 바라서, 두 형용사가 떠오릅니다.
아버님의 추구미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네요. 추구미ㅎㅎ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제가 올해로 60대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할 때는 젊은 청춘의 군복을 입었지만 전역할 때는 입대했을 때와 달리 몸이 늙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게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했던 생각을 지금까지도 유지하려고 해요. 젊음이라는 것은 나이가 아니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요. 그래서 지금도 젊다는 기분으로 청춘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그게 돈을 벌 때도,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육체적인 나이는 마음을 젊게 생각하면 천천히, 적게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제 추구미는ㅎㅎ ‘내가 지금 청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자. 언제까지나 100세까지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자.’ 하는 마음이에요.
기록가를 딸로 둔 아버지로서 시현하다 기록가들에게 자식이다 생각하고 한마디 해주세요!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손님 스스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밝은 모습을 남겨주는 기록가들은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가들도 행복을 느끼는 행복 전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 전도사를 계속하려면, 첫 번째가 바쁜 가운데에도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틈틈이 건강을 위한 운동, 식단, 마음의 휴식 등 조화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록가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진 촬영 기술, 색 공부, 구도, 사람에 대한 관심, 트렌드 연구, 심리학 등 다방면으로요.
세 번째는 항상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기록을 남길 때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기록가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INTERVIEW 변재선
By 민후 에디터
2019년 겨울, 첫 번째 칸 기록가가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을 기록해 온 진솔 기록가가 5년이 지난 지금 다섯 번째 칸으로 승급되었습니다!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진솔 기록가에게 어떤 콘텐츠를 진행하고 싶은 지 저희 브랜드콘텐츠실에서 직접 물어보았는데요.
"우리 아빠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어요."
놀랍게도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아버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답변을 주었습니다. 사실 진솔 기록가는 아버님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아버지께 감사함을 담아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특별한 추억으로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제안했다고 합니다. 진솔 기록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아버지의 다채로운 모습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지금 함께 들어보실까요?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진솔 기록가 아버지 변재선입니다. 군 생활 34년 하고 퇴직한 다음에 또 금융회사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지금은 세종대학교 정보보호학과에서 초빙 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라를 위해 복무하신 후, 교수님이 되신 점이 굉장히 인상 깊은데요. 그중에서도 정보보호학과 교수가 되신 계기가 따로 있으실까요?
제가 군에 근무하면서 컴퓨터 전공을 하면서 IT분야, 정보보호 분야 이런 업무들을 진행해 왔어요. 더 나아가 관리자 역할까지 맡았었는데요.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 대학교에서 제안을 받아 지금 3년째 정보보호학과에서 교수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이버전 개론 또는 관제 및 대응 정보보호법 제도 정책 등 이런 분야에 강의를 하고 있어요. 군에서 담당했던 업무와 연관성이 있고 제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책임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님만의 사명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사이버 사령관으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실무 경험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저희 학생들이 이 분야에 특히 더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고요. 우리 과 학생들은 학문을 배우는 분야라서 그런지 실무에 참고할 수 있는 경험들을 특히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해킹과 같은 사이버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이,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미래에 사이버 안보 분야의 주역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개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맡은 분야에 사명감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끼고 있죠.
아버님을 닮아 진솔 기록가도 주어진 일을 멋지게 해내시는 것 같아요. 시현하다 내에서도 기록가들을 잘 챙기고, 리더의 역할을 잘하는 기록가거든요. 아버님이 보기에 진솔 기록가가 아버님을 닮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사실 저는 굉장히 자유롭고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성향이에요. 근데 진솔이도 자존감이 높고 혼자만의 영역을 잘 챙기면서도 남을 위한 배려심이 굉장히 깊거든요.
아까 사진 찍으면서 진솔이가 시현하다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오는 고객분들이 편안하게 찍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걸 어떤 말로 이해했냐면 스스로 자유롭고 편안하길 원하는 사람은 나처럼 상대방 또한 그런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진솔이가 손님들이 편안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점들이 저하고 닮았단 생각을 종종 했어요.
진솔 근데 그걸 서로 얘기는 안 해봤어요. 오늘 저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요.
재선 그렇죠. 이 부녀지간도 대화가 평소에는 짧게 짧게 일상적으로 주고받지만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건 많지 않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ㅎㅎ
오늘 기록에서는 3가지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앞서서는 아버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면 캐주얼한 룩과 어울리는 질문을 해볼게요. 아버님의 평소 취미가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 60대 중반인데 취미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질문하면 사실 지금도 답을 못 하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MZ세대와 저희 세대의 차이점이 저희들은 과거에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한 게 아니고, 여건에 맞게 그냥 해오다 보니 지금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직업도 선택했고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온 것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저에게는 참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도 대답해 드려야 한다면 저는 요즘 골프를 좋아해서 종종 치러 나가곤 한답니다.
골프를 치는 게 가장 좋아하는 것이긴 하지만… 취미 생활이라고 해도 될까요? 이 외에 취미생활이라고 말할만한 게 무엇인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문학적으로나 인문학적, 음악적인 예술 분야를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는데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진솔 만드시는 것을 잘하지 않으셨을까요?
재선 손재주가 있긴 하지. 애들 침대 같은 거 만들어주고 그런 거 잘했죠. 어릴 적에 2층 침대 만들어서 종우, 진솔이를 위해 미끄럼틀까지 있는 침대를 내가 만들어줬거든요.
진솔 기록가님 기억나시나요?
진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아빠가 집에서 뚝딱뚝딱 침대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땐 그게 그렇게 대단한지 몰랐어요. 그저 2층 침대가 생긴다는 게 신났던 것 같아요
모양이 정확히 기억나요!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고, 내려올 땐 미끄럼틀로 내려오는..! 오빠랑 그 침대에서 소꿉장난도 하고 많이 놀았던 기억이 나요. 기억에 남는 게, 1층에 누운 사람이 발로 2층 판자를 밀면 위에 있는 사람이 침대 판자와 함께 들리는(?) 구조였는데 오빠랑 싸우면 오빠가 화나서 발로 판자를 들어서 저를 들어버렸던 기억도 나요.
어린 시절에 다들 소중했던 애착 장난감 하나씩 있잖아요? 여러모로 저희 남매에겐 그 침대가 추억에 큰 부분을 차지했었어요.
지금까지 시현하다 기록가 중에 부모님 사진을 진솔 기록가가 가장 많이 남겼더라고요. 이건 진솔 기록가와 아버님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이 많은 사진을 남기셨을까요?
진솔 제가 데뷔 때부터 많이 언급 했었지만, 엄마 사진을 많이 남겨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었기에 “아빠 사진만큼은 후회 없이 많이 남겨드리자” 결심했어요 :)
우리네 아빠들은 30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셨고, 비슷한 포즈의 사진들을 많이 찍으시잖아요? 저는 아빠의 청춘을(지금도 청춘이시니까) 더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많이 남겨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빠가 그런 저의 마음에 잘 따라와 주시고 또 사진에 멋지게 담기는 것을 나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찍게 되었어요. 아빠를 많이 기록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지 않을까요.
진솔님과 지금도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고 싶은 아버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데요, 부녀지간에 데이트를 하기도 하나요?
재선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지난번에 진솔이한테 ‘너 촬영 날 점심시간에 시간 되는 날 나한테 연락만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밥 사줄게’ 했거든요. 근데 진솔이가 촬영 날 밥 사달라고 전화한 적이 없어요. 촬영 날은 진솔이가 워낙 바빠요. 그래서 한 번도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시현하다가 우리 딸을 뺏어갔죠.ㅎㅎ
진솔 밥 한 끼 먹는 시간을 못 낸 게 마음이 쓰이네요. 시간을 내볼게요.
재선 진솔이가 시현하다 입사하기 전에 나랑 둘이 산 적이 있거든요.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딸이 결혼도 하고 하니, 그럴 시간과 기회가 없어져서 더 아쉬운 것 같아요.
진솔 아빠랑 저랑 휴무일이 다른 것도 큰 것 같아요. 아빠가 아쉬워하는 걸 오늘 알았으니 조만간 데이트 각 잡아볼게요.
오늘 촬영이 데이트가 될 수도 있겠네요. 컨셉을 3가지 준비해오셨는데요. 각 컨셉에 맞춰 표현하시고자 했던 포인트가 있을까요?
진솔 아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이 군인이에요. 제가 아가일 때부터 대학교 졸업 이후까지도 매우 오랫동안 저에겐 군인 아빠로서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역할 때 사진을 남겨 드리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는데 이번에 아빠의 자랑스러운 오랜 직업을 꼭 남겨드리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전역하시고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화보처럼 담아드리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마지막으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 모습, 장난꾸러기에 긍정적이고 밝은 아빠의 성격이에요!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셨던 만큼 닮고 싶은 아빠 모습이라 제 최애 사진이 될 것 같네요.
이번 촬영을 하면서 아버님도 자신의 3가지 면이라던가, 자신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 돌아보는 시간이 되셨을 것 같아요. 인생을 돌아볼 때 아버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살면서 여러 가지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지요!
첫 번째는 당연히 아들과 딸이 태어나는 과정이에요. 아들은 출산 예정일에 휴가를 내서 갔는데 예정일이 지나도 태어나지 않더라고요. 휴가를 연장하면서 힘들게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본 순간! 그리고 딸은 예정일보다 빨리 나오려고 해서 급히 병원으로 한 시간을 이동하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30분 만에 나와서 조금만 늦었어도 차량에서 태어날 뻔한 순간이 가장 뭉클하고 가슴 벅찬 기억이었어요.
두 번째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전후방 각지에서 위수지역이라는 지리 공간적 제한을 두고 생활하는데, 94년도에 약 20개월간 유럽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딸과 아들이 만 2~3살, 3~4살이었을 때인데 오스트리아 각 도시를 여행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캠핑도 하면서 차량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기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지요. 그때 찍은 필름 사진과 캠코더 영상이 지금도 집에 한가득 있네요.
마지막으로는 진솔이 관련 기억으로 엄마가 매우 아파서 중3 때부터 따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도 고등학교 때 갑자기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더니 수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했던 것. 디자인학과 졸업 후에도 갑자기 좋아하는 사진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저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후원하면서 현재, 시현하다 다섯 번째 칸 작가가 된 것은 아빠로서 참 자랑스러운 기억입니다.
아버님에게 있어 기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기록이란 국가나 민족의 역사, 조직이나 기업의 연혁, 일반 가정의 족보, 개인의 인생 역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사진을 찍고 그것을 남긴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느껴져요.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록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관련된 네트워크(가족, 친구, 비즈니스 등)를 유지하고 관계를 맺는 전 과정을 담고 있으니까요!
특히 요즈음 각종 SNS를 통해서 기록을 저장하고, 공유하는데 1순위 매개체가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사진 이외에도 생각이나 사실을 기록한 글이 중요한데, 좀 더 살아본 다음 80세쯤 되면 내가 살면서 순간순간 남긴 생각과 살아온 역정을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유명한 분들이 남기는 자서전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살아온 삶의 궤적을 자손들에게 남기는 것이지요!
시현하다 다운 질문 하나 해볼게요.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를 골라본다면?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제 내면에 있는 형용사가 다른데요. 이번에는 내면에 있는 형용사를 이야기해 볼게요.
첫 번째로는 #자유분방한, 그리고는 막 빨간색처럼 뭔가 이렇게 #열정적인. 이런 게 제가 내면에 갖고 있는 형용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은 틀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틀에 갇혔다는 것은 방금 이야기한 형용사를 내가 살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라 생각돼요. 조금 더 자유롭게, 형식에 갇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열정적으로 해내고 싶은 일이나 새로운 경험이 앞으로도 많이 주어지길 바라서, 두 형용사가 떠오릅니다.
아버님의 추구미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네요. 추구미ㅎㅎ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제가 올해로 60대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할 때는 젊은 청춘의 군복을 입었지만 전역할 때는 입대했을 때와 달리 몸이 늙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게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했던 생각을 지금까지도 유지하려고 해요. 젊음이라는 것은 나이가 아니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요. 그래서 지금도 젊다는 기분으로 청춘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그게 돈을 벌 때도,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육체적인 나이는 마음을 젊게 생각하면 천천히, 적게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제 추구미는ㅎㅎ ‘내가 지금 청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자. 언제까지나 100세까지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자.’ 하는 마음이에요.
기록가를 딸로 둔 아버지로서 시현하다 기록가들에게 자식이다 생각하고 한마디 해주세요!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손님 스스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밝은 모습을 남겨주는 기록가들은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가들도 행복을 느끼는 행복 전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 전도사를 계속하려면, 첫 번째가 바쁜 가운데에도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틈틈이 건강을 위한 운동, 식단, 마음의 휴식 등 조화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록가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진 촬영 기술, 색 공부, 구도, 사람에 대한 관심, 트렌드 연구, 심리학 등 다방면으로요.
세 번째는 항상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기록을 남길 때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기록가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